내가 초등학생이던 1983년 겨울. 공습 사이렌이 울렸고, 나와 동생은 겁을 먹고 어머니에게 피난을 가자며 졸랐다. 식사를 준비하시던 어머니는 차분히 책을 읽으라고 하셨다. 이웅평 소령의 귀순 사건 이후 40년이 흐른 어느 새벽, 전 국민의 스마트폰에 울린 대피 경보는 그때처럼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습보다 무서운 경보였다. 적의 공습과 편의 경보 모두 두려운 일이다. 적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때로는 적이 더 예의를 갖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어둠이 가장 깊을 때 새벽이 가장 가깝다.
정겨움에 대하여
첫 뉴스레터를 보내고 많은 답장을 받았다. 소셜 네트워크가 보편화되다 보니 안부 메일 한 통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좋아요는 오천 분의 일이지만, 이메일은 나와 상대방의 온전한 소통일 수 있으니까. 내 한 몸 챙기기도 힘든 세상, 주변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바보처럼 인식되기 십상이다. 몸이 아픈 선배, 새 출발 하는 후배, 얼굴 보기 힘든 친구들.. 뉴스레터를 시작하면서 그런 지인들의 이메일 주소부터 물어물어 추가했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정겨움을 되찾기 위해서. 지금 보고 싶은 사람에게 메일을 보내세요.
생각이 같은 사람이 편(便)이다. 편은 편한 관계고, 너무 편하면 치우치게 된다. 같은 사람끼리만 어울리면 편견이 생기고, 행동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그럼에도 무자비한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만의 풀(pool)이 필요하다. 특정한 집단에 들어가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싫어도 집단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 풀이 커지면 결국 내 편과 상대 하나만 남는다. 남북, 좌우, 남녀, 신구.. 사이는 없다. 편에도 유효기간이 있다. 결코 영원하지 않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놔야 대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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